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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세미나] [제1차 세미나] “불교여성운동의 흐름”을 읽고   2004-09-20 (월) 10:50
불교여성개…   3,785

본 논문은 한국근현대불교사에서의 불교여성운동의 활약상과 그 의미를 살펴 현대 불교여성운동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글인 것 같다. 이 글을 논평하기 앞서 이윤수 선생님(필자)이 겪었을 고충을 짐작해 봤다. 근현대사 속에서 불교여성운동의 정체성을 정확히 집어내고 이를 통해 현 불교운동의 방향을 제시할 정도로 불교계의 역량이 아직은 높은 수준에 까지 이르지는 못한 상황에서 연구과정에서 필자가 겪었을 고충은 상당히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점은 비단 필자에 한정되기 보단 현 한국불교여성계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필자의 고충과 한국불교여성계의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면서 논평을 통하여 미력하나마 몇 가지 조언을 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연구 자료가 주로 해방직후까지의 여성불교계의 상황을 전하고 있는 반면에 이 글은 해방이후의 자료는 물론 80~90년대에 이르는 최근의 자료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 자료에 의해 그나마 최근의 여성불교계의 동향과 역할을 감지해 낼 수 있다. 이 점이 기존의 연구 성과에서 진일보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성불교계의 활약상을 시기별로 사건에 따라 나열하고 약간의 의미해석을 한 채 그냥 글을 끝맺고 있다. 더구나 여성불교계에 출현했던 다양한 문제점들을 심층적으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부조리한 현상들을 예방할 어떤 비젼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제 5장 불교여성운동의 흐름을 통해 본 과제’에서 앞으로의 과제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몇 가지 지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필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1) 조선말에서 일제치하에 이르는 불교의 사회운동은 여성불자들의 역량을 보여준 작업이다. 2) 불교여성단체의 조직화와 전문인력의 영입이 여성불교계에 아주 시급한 문제이다. 3) 불교계와 사회 제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역사찰과 연계해서 지역주민의 삶을 고양시키는 불교여성단체의 활약을 기대한다. 4) 교단내의 완고한 남녀차별문제, 특히 비구니 스님의 현실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발언해 줄 여성단체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5)으로 불교여성개발원에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다양한 의사소통의 장을 만들자. 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적들은 필자에 의해 새롭게 제기된 문제라기 보다 이미 여성불교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들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논평자(이현옥 이하 평자)는 논문을 받기 전에 불교단체 활동을 해 본 경험을 살펴 필자가 여성불교계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과감히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본 글을 받아보고는 다소 실망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은 한국근현대불교사에서의 불교여성운동의 활약상을 통해 불교여성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필자의 의욕적인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의 주제는 엄청난 내공을 필요로 하는 글이다. 만약 내공의 힘이 없으면 개론적으로 끝날 소지가 많은 글이기도 하다. 차라리 본 글의 결론격인 ‘제 6장 불교여성운동의 흐름을 통해 본 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었으면 고생도 덜했을 것이고 결과도 휠씬 좋았을 것이다, 적어도 제 6장에서 향후 우리들의 과제로 돌린 질문들을 필자 스스로 해답을 구해서 그 일부라도 우리들에게 알려줬어야 했다. 왜 오랜 세월 동안 여성불교계의 활동상이 그토록 많았는데도 일회적이고 비조직적이며 비전문화 되어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말이다. 여성(비구니 스님을 포함해서)이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하소연하고 보호해줄 불교단체가 거의 없고 이를 공론화해줄 불교 언론을 찾기 힘든지를 정말 알고 싶다는 것이다. 현 여성불교계에서 바라는 점도 바로 그것이다. 현재 출가자의 60% 이상이 비구니 스님이며, 평신도의 대부분이 여성재가신도라는 사실을 우리뿐만 아니라 종단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교계는 시대의 조류에 순응하기보다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많은 문제들을 끌어안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대략 두 가지 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여성불교계의 인식문제이다. 불교계의 여성출가자나 재가자는 자신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가 종단내의 부조리와 모순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보단 자신의 문제로 돌린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팔경법과 같은 율법과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종단내의 여성비하는 온당하다는 비구 스님들의 생각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오히려 여성불교인들은 그것을 따르는 것이 종교적 미덕이라 생각한다. 여성 출가자(비구니 스님)들 조차 부당한 대우에 항변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간혹 항변하는 일부의 의견들은 계속 무시되어 왔던 것이 불교계의 현실이다. 이제 한국불교계 종단(물론 모든 종단 모든 비구 스님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은 여성 비하의 입장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여성의 가치와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세계적인 추세를 보더라도 그렇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여성비하를 조장해 온 근거(팔경법)가 반불교적일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발전에 역행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성비하의 근거가 되어 온 팔경법이 부처님 친설이 아니며 후대에 삽입 혹은 조작되었을 개연성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 최근 학계의 동향이다. 또 이것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법은 부처님의 친설을 빙자하여 보수적인 비구승단에 의해 부처님 사후에 계목이 삽입되었을 것으로 여성불교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또한 계율의 제정은 사회적 여건과 시대 상황의 반영인 것이다. 이미 제정된 계율이라 해도 시대 상황이나 부처님의 근본정신에 위배되면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여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대승계율의 정신인 것이다. 대승불교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불교계는 현재와 같이 소승의 율법에 의해 수계를 받는 것보다 대승의 율법에 만 근거해 계를 받고 출가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여성비하의 내용이 전혀 없는 대승계율에 근거해 수계를 받는다면 대승불교 정신을 드높이고 남녀불평등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기존의 수계방식을 고수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한편 한국문화는 고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부계(父系)에 비중을 두고 있었으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계(兩系)를 고르게 인정하는 제도와 문화가 사회전반에 확신되어 왔다. 당시의 남녀관계는 주종관계가 아니었으며 평등과 화합이 공존하는 상생 관계였던 것이다. 이런 부모 양계를 인정하는 문화의 배후에는 불교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법화경> <승만경> <유마경> 등과 같은 대승경전에서는 대승불교의 주역이었던 여성을 여래, 부처, 법사로 간주하여 불교의 최고 경지에 오른 완벽한 인격체로 본다. 이러한 불교의 시각이 자연스레 한국문화 속에 스며들어 여성의 가치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제도와 법령의 확립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한국불교는 일찍이 다른 불교국가에서 유래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독립적인 비구니의 교단을 이미 신라시대에 세웠다. 그래서 한국의 비구니 스님들은 수계를 비구 스님에게 받지 않고 비구니 스님을 은사로 모시는 아름다운 전통을 갖고 있다. 이것이 한국불교의 저력이다. 그러나 이런 뛰어난 한국불교의 전통은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일제의 강령, 군사독재 정권의 장기집권, 비구와 대처의 극한적 갈등 등 암울한 현실로 이어지면서 전통문화의 몰이해와 단절을 낳게 되었다. 이 점이 부계중심의 권위주의적 가부장제가 한국의 가장 이상적인 사회제도로 둔갑하게 했고 또한 꼭 지켜야 할 문화양식으로 한동안 잘못 인식하게 만들었다. 둘째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불교계에서 비구 스님은 아버지의 위상을 갖고 있다. 마치 옛날 엄하고 주관이 강했던 우리들의 아버님들이 어머님의 의견을 묵살하고 순종하기를 바라던 것처럼 종단의 제도와 운영들은 비구 스님들에 의해 전적으로 운영된다. 우리들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비구니 스님에게는 한정된 권리만 주어지고 숨죽이고 조용히 살아야 한다. 오늘날의 한국불교계가 출가자의 권위를 회복하고 출가자의 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비구니 스님의 위상과 처우는 반드시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수한 비구니 스님을 종단운용에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신도의 교육과 관리차원에서 여성문제를 전담하고 그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전담부서나 연구소를 설립 혹은 확충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종단 사립대학교나 큰 강원에 가칭 불교여성문제연구소나 비구니연구소를 하루 빨리 세워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사찰과 연계하여 여성신도의 교육과 지위향상에도 힘쓰는 한편, 비구니 스님의 종단 내 주요 요직 선출권이 반드시 주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여 여성들의 의견이 종단운용과 제도에 직접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선결하지 않는다면 불교계내의 여성문제는 일회적인 것으로 끝날 것이며 어떤 결실을 얻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불교내의 여성문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 불교계 언론과 재야단체가 연계하여 여성문제를 공론화하고 사회전체로 확산할 수 있도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을 실어 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의식 있는 비구 스님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여 불교계의 고질적인 여성비하의 문제들을 같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이러한 결실들이 하나 둘 모이다 보면 불교계에서 반불교적 요소를 몰아내고 한국불교의 전통성을 회복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제2차 세미나] 초기불교시대 여성재가불자의 수행생활 - 재가불자의 의미 
[제1차 세미나] 불교여성운동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