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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한국 여성불자 선수행, 천년 전부터 시작돼”   2021-12-23 (목)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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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여성연, 개원 10주년…‘여성불자의 역사적 조망과 전망’ 조승미 박사 “신라말 경유 스님 비문에 여성불자 3인 등장” 이경순 연구사 “대안적 역사쓰기로 구술생애사 연구시급”

여성불자는 한국불교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불자 60%가 여성일만큼 여성불자 신행 활동은 중요한 축이었지만 그에 비해 역사적 평가는 ‘짠’ 편이다. 가족만 챙기는 이기주의와 낮은 근기로 기복에 머물러있다는 편견에 갇힌 수준.

여성불자의 진면목을 찾고자 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 불교여성연구소가 나섰다. 불교여성연구소(소장 송현주)가 11월26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개원 10주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주제는 ‘한국불교 여성의 역사적 조망과 전망’이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4명의 연구자가 남성중심의 역사에 가려진 여성불자 수행의 뿌리를 탐색하고, 여성불자 연구를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먼저 조승미 동국대 박사(불교여성연구소 연구위원)는 ‘한국불교 여성의 선수행, 그 천년의 역사’를 통해, 재가여성의 선수행 역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놨다.

한국 선불교의 기원은 보통 8세기 신라 도의국사에서 찾는다. 또 비구니스님을 포함해 여성불자가 선불교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3세기 고려시대부터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날 조 교수는 “놀랍게도 10세기 신라말 비문에 여성불자들이 선사의 제자로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여성불자의 선수행 역사를 2세기나 끌어 올린 셈이다.

이 비문의 주인공은 신라 법경대사 경유 스님(871~921)이다. 나말여초 시기 당나라에 들어간 경유 스님은 운거도응 스님(?~902)의 문하에서 선법을 전해받았다. 스승인 운거도응 스님은 조동종 개창조 동산양개 스님(807~869)의 제자이기도 하다. 조동종 선법을 신라에 전한 경유 스님은 종교적 위상만큼 정치적 위상도 높았다. 고려 태조 왕건은 경유 스님을 자신의 스승인 왕사로 두고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구했다. 스님의 비문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제자도 태조 왕건이다. 왕건에 이어 여러 호족과 중앙관료들이 관위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세 명의 여성불자가 있었다. 고위관직자 이름 옆에 있어 그들의 부인으로 추정된다. 조 박사는 이들이 조동종 선법을 배운 제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비문에 이름을 올린 동일 직급의 대부분은 부인이 함께 적혀있지 않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동반 명시가 아니다”고 전했다. 이어 “부인박씨·부인김씨·부인검씨는 순수하게 선법을 배운 제자가 아니었다면 굳이 비문 명단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 박사의 분석이 맞다면 여성불자의 선수행 역사는 천년이 넘는다고 볼 수 있다. 경유 스님이 열반한 해인 921년을 기준으로 삼아도 1100년이 되기 때문이다. 조 박사는 “스님은 태조의 왕사였기에 고위관료와 교류가 잦았고 부인들에게 선법을 가르치기 용이한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고려시대 여성불자의 수행을 탐색한 논문이 발표됐다. 김영미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고려 여성불자가 오늘날 현대 여성불자와 마찬가지로 염불, 절, 독경, 참선, 지계, 불사를 통해 다양한 신행활동을 펼쳤다고 분석했다.

당시 여성불자들 대부분은 여성 몸으로는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고 보았다. 내세에 남자로 태어나 성불하길 바랐다. 하지만 불교의 이해가 점차 깊어지면서 현실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시도됐다. 특히 김 교수는 진강후 최충헌 부인 진강후비 ‘왕도인’의 사례를 언급하며, “여성불자들은 화두를 들고 참선했다”고 강조했다. 왕도인은 진각국사 혜심 스님(慧諶, 1178~1234)으로부터 조주(趙州) 스님의 “방하착(放下着)” 화두를 받았다. 김 교수는 왕도인의 사례만이 아니라 당시 고려 여성불자가 선사들 지도 아래 참선 수행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역사에 갇혀있던 여성불자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 연구방법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근대여성을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개혁과 새로운 제도, 공적인 사회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근대성’의 잣대로만 인물을 평가한다면 여성불자의 가치는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포교해 온 비구 삼우 스님이 2005·2006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200여명의 비구니스님·여성불자의 구술을 채록한 자료에 대해 설명하며, “1년 동안 연구실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간난과 질곡의 생생한 역사는 제 연구실을 가득채운 책 안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서구학계는 이미 전통종교가 가진 가부장적 요소를 날카롭게 분석해 여성의 권위를 되살리고 있다고 전하며, “우리 불교학계도 한국의 여성불자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단한 영웅적 여성 한두 명의 역할을 강조하기보단 한국불교를 지탱해 온 여성불자 일반과 평범한 비구니의 자취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도 조 교수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 연구사는 여성불자 구술생애사에 대한 연구사가 시급하다고 전했다.

그간 여성불자 연구가 진척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한 이 연구사는 “한국불교에서 여성불자는 여전히 권위적 교단체제와 가부장제에 포박돼 가려진 존재”라고 해석하며, 그들의 주체적 경험과 현실인식을 담아내는 대안적 역사쓰기로 구술생애사가 유용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이것이 사료의 무게를 갖기위해선 구술채록 대상 선정에 유의해야한다고 전했다. 이 연구사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불교계에서도 구술채록작업이 본격화 됐다. 하지만 사업 착수단계부터 구술 방법과 절차가 체계화되지 않아 여러 혼란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간 구술사업은 주요 사건이나 인물을 부각하는데 주력해 구술자 대부분이 남성이었고, 큰스님 또는 큰스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 집중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 연구사는 “구술사는 주류 역사학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됐다. 아래로부터의 역사쓰기, 평범한 이들의 삶에 귀기울이기 등 구술사 본래 의미에 입각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가 끝난 후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자로는 안환기, 계미향 불교여성연구소 연구위원이 나섰다.

이날 송현주 불교여성연구소장은 “불교가 372년 고구려에 전래된 이후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불자의 삶은 한국불교사에서 단편적인 사실만 언급됐을 뿐”이라며 “유력한 이웃종교들과 비교해보면 여성불자에 대한 연구 부재가 더욱 실감난다”고 전했다. 이어 “저명한 연구자분들과 함께한 오늘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한국불교여성사’가 발간됐으면 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 여성불자의 정체성을 찾는 거시적 목표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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