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혜로운여성
      > 기자회견     

'사찰 미술, 건축'   2005-01-07 (금) 01:01
구현정   9,163

가람(伽藍)의 기원

가람의 뜻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승가람마(僧伽籃摩)의 줄임말로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집, 곧 절의 건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가람은 인도어의 'Sangarama', 'Sangharama'에서 유래된 것으로 'Sangarama'를 한자로 음역하여 승가람마(僧伽籃摩) 또는 가람(伽籃)이라 하며, 의역하면, 승가(僧伽)란 중(衆), 람마(籃摩)는 동산(園)의 뜻으로 중원(衆園), 승원(僧園), 승원(僧院)을 의미하며 여러 승려들이 모여 불도를 닦는 곳을 지칭한다.
가람은 불교건축을 대표하는 총칭이다. 승원으로서 가람은 원래 당(堂), 탑(塔), 가람(伽籃)이라고 하여 이들 3자는 각기 개별적인 것이었으나 후세에 와서 가람이라고 하면 승원으로서 가람에 당, 탑을 합쳐서 불교건축 전부를 말하게 되었다.
즉 사원을 형성하는 불교건축일반을 가람이라 하게 되었고 그 가람속에 승원과 당, 탑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불교미술의 대상으로 가람은 승원, 당, 탑의 건축양식과 그 기법등이 주목됨은 물론 이들 3자가 상호 어떻게 배치되어 있느냐 하는 소위 가람배치기법도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가람으로서 승방, 당, 탑등은 처음부터 정연한 체계를 갖고 가람배치에 의한 불교건축이 이룩된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각기 필요에 응하여 개별적으로 발생하였으나 점차 발달하여 승방, 당, 탑 이외에 산문(山門)등을 포함하여 이들 상호간에 조화의 미를 형성하게 된것이 후대의 가람미에 의한 가람 형성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만 이들이 발생한 차례를 보면 승방이 가장 빠르고 이어 탑 그리고 당이 세워지면서 일련의 불교건축군을 형성하게 되자 여기에 하나의 질서를 쫓아 가람배치등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불전(佛殿)

가람배치상에서 가람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당(堂)이다. 당은 불당, 즉 불전을 지칭하는 말로 금당(金堂), 법당(法堂)등오로 불리워진다.
불전의 명칭은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각종 불전이 있으며 이러한 각종 전각들은 상.중.하단의 개념으로 배치된다. 즉 신앙형태의 구조에서 볼때 불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 상단신앙(上壇信仰), 불법의 수호신을 모신 옹호신중각(擁護神衆閣)의 중단신앙(中壇信仰), 그리고 이들 神衆이 다시 분화되어 원래의 모습을 불교적으로 전개하고 신앙하게 된 하단신앙(下壇信仰)으로 나뉜다.
또한 배치상으로 보면 상단이 중앙, 중단이 전면, 하단이 불전의 후면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불전의 종류

1.대웅전(大雄殿)
불사 전체의 주불전인 금당에 해당하며, 사바세계의 석가모니가 계신 곳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대웅전 건물은 사찰 전체건물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장엄하게 대규모로 건축하는 관례적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그 협시로 문수.보현보살을 봉안한다.
대웅전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고 할 때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상을 모시며, 각 여래불 좌우에 제각기 협시불을 봉안하기도 한다.
대웅전이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있음은 그것이 석가모니의 법회모임인 영산회모임, 즉 영산회상을 나타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2.극락전(極樂殿, 無量壽殿, 아미타전, 普光殿)
아미타경(阿彌陀經) 및 무량수경(無量壽經)을 근거로 하여 아미타불을 주불로 안치하는 극락전은 극락세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전을 무량수전이라고도 부른다. 기타 명칭은 보광전(普光殿)(예:남원 實相寺, 예천 龍門寺, 충무 龍華寺)이 있다.
아미타전이라고 했을 때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신 불전임을 뜻하고 무량수전이라고 했을 때는 무량수불을 주불로 한 의미인데 아미타여래와 무량수불이 결국은 같은 여래이므로 마찬가지의 뜻을 갖는 불전이다. 극락전이라 함은 아미타여래나 무량수불의 정토를 극락이라고 한테서 온 것이다.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봉안하고 그 협시로 관음대세지보살을 봉안한다.
대웅전이 영산회상을 상징하고 있다면 아미타전은 아미타여래의 법회인 미타회상을 상징화 한 것이다

3.약사전(藥師殿)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를 주불로 안치하는 불전이며, 그 협시로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의 내용에 따르면 동방의 많은 세계를 지나가서 유리세계(琉璃世界)가 되며 약사여래는 그 교주(敎主)이고 장엄한 궁전으로서 여자가 없고 죄악고통(罪惡苦痛)이 없는 청정한 극락이라 한다. 이 불전은 약사여래의 정토인 동방약사유리광회상(東方藥師琉璃光會上)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것이다.

4. 관음전(觀音殿; 圓通殿)
관음전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안치하는 불전이며, 관음보살은 일명 원통대사(圓通大士)로도 불리우므로 관음전을 원통전이라고도 한다.
그 협시로는 남순동자(南巡童子), 해상용왕(海上龍王)을 들 수 있으나 이들은 조상하지 않고, 후불탱화(後佛撑畵)에만 나타나고 있다.
원통전은 주원융통(周圓融通)한 자비를 구한다는 뜻에서 원통전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원통전은 부불전(副佛殿)으로 보살단(菩薩壇)에 속하는 경우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으로 그 협시로는 남순동자, 해상용왕을 들 수 있으나 이들을 조각상(彫刻像)하지 않고 후불탱화에서만 나타나고만 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을 모든 고난에서 구제하고 해탈로 인도해 주는 보살로 미륵신앙과 같이 念佛(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며 부처의 상호.공력을 억념하는 일)을 수행방법으로 한다. 이러한 관음신앙을 반영한 불전을 관음전 또는 원통전이라 한다.

5. 응진전(應眞殿; 羅漢殿; 靈山殿)
석가모니의 16대 제자를 모시는 불전이며 한국내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전이다.
아집번뇌(我執煩惱)를 끊고 생사를 초월한 聖者를 응진(應眞), 무학(無學), 응공나한(應供羅漢)이라 하므로, 응진전을 나한전(羅漢殿), 응한전(應漢殿), 16나한전 등으로 불리우며 또한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좌우에 석가의 존자인 16대 나한상을 봉안한다.
이 불전은 불교에 있어 수도승에 대한 신앙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6. 비로전(毘盧殿; 大寂光殿; 大光明殿; 華嚴殿)
화엄경(華嚴經)을 근거로 하는 비로사자나불(일명 大日如來)을 주불로 모시는 불전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 근거한다는 뜻에서 화엄전, 화엄경의 주불이 비로자나불이라는 뜻에서 비로전, 그리고 화엄경의 세계가 연화장세계, 즉 대정적(大靜寂)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은 대적광토에 있으면서 화엄을 항상 설(說)했다 하여 대적광전이라고도 불리우며 빛을 발하여 어둠을쫒고 진리를 상징하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불전이다.
주불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우에 화신불로서의 석가모니불과 보신불로는 각각 그 좌우에 문수, 보현, 관음, 세지보살을 협시로 봉안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적광전은 불전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합천 행인사 대적광전, 금제 금산사 대적광전이 그 예다

7. 팔상전(八相殿; 靈山殿)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대기인 팔상탱화를 봉안한 불전을 말한다. 팔상전에는 주불로는 좌우 협시로는 상리보살과 미륵보살을 봉안한다.
팔상(八相)이라 함은 불보살(佛菩薩)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려고 일생동안 나타내어 보이는 팔종(八種)의 상(相)이며, 팔상전은 팔상을 상징하는 불전이다. 응진전(應眞殿)이 없는 사찰에 있어서는 팔상전을 영산전이라 하고있다.(양산 통도사) 영산이란 석가의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의 준말이다.

8. 미륵전(彌勒殿; 龍華殿)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다. 미륵불의 회상, 즉 세계가 용화세계(龍華世界)이므로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사부아함경(四部阿含經), 유가론(瑜伽論), 미륵상하생경(彌勒上下生經) 등을 근거로 한 미륵불은 56억 7천만년후에 용화세계에 재현한다는 미래불이며, 미륵불을 신앙(信仰)하면 사후(死後) 도솔천 또는 용화세계에 태어나 죄업(罪業)이 소멸되고 복덕(福德)이 성취된다고 한다. 미륵불은 입상(入像)으로 옥외에 설치된 예가 많으나 미륵불상으로 실내에 안치한 불전이 미륵전이다. 금산사 미륵전이 대표적이다.

9. 명부전(冥府殿; 地藏殿; 十王殿)
명부(冥府)라 함은 죽은 영혼의 종착처(終着處)를 뜻하고, 무량고(無量苦)에 빠진 자를 건지고 지옥문을 출입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로 안치하는 불전이며, 천상(天上)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 여섯가지 형태의 존재, 즉 인간(人間), 천(天), 아수라(阿修羅), 아귀(餓鬼), 축생(畜生), 지옥(地獄) 등의 존재를 하나 하나 교화시켜 성불(성불)시키는 역할을 함으로 구원의 이상을 표현하는 불(佛)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협시로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배열한다.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배열하고 있다. 그래서 지장이 강조될 때는 지장전이라 하고 명부시왕이 강조될때는 명부전이라고 한다. 명부시왕 신앙의 불교적인 전개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10. 각황전(覺皇殿)
구례 화엄사에 있는 특수명칭의 불전이며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의 삼존불(三尊佛)이 안치되고, 그 사이사이에 문수(文殊), 보현(菩賢), 관음(觀音), 세지(勢至)의 사보처 보살입상(四補處 菩薩立像)이 안치되어 있다. 각황전 본래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다. 부처님의 봄을 일컬어 장육금신(丈六金身)이라 말한다. 장육전에는 석가여래의 모습인 장육존상을 봉안했을 것이고, 그러한 장육존상의 예는 신라 황룡사 금당 장육존상대석(丈六尊像臺石)의 유지(遺址)에서 알 수 있다


암자(庵子)

암자(庵子)라 함은 본사 경내 주변에 있는 일종의 본사의 직속말사이며, 그 위치는 거리상으로 본사에서 약 6km 이내에 산재한 예가 많으며, 암(庵), 원(院), 사(寺) 등의 각종 명칭이 있다.
각 암자 건물의 수는 단일불전 또는 신각(神閣)등에서 시작되어 대규모의 말사에 이르기 까지 그 규모나 건축양식 등이 일정하지 않다.

조사당(祖師堂)

진영당(眞影堂), 국사전(國師殿), 영모전(永慕殿)등의 명칭으로 불리우며 종조(宗祖), 개산조(開山祖) 또는 저명한 주지(住持) 등의 화상(畵像)을 벽에 안치하고 그 앞에 간이한 제단을 마련한 전각(殿閣)이며 실내 각 벽에 여러 화상을 게시하는 것이 보통 예이다.
선종사찰에서는 조사에 대한 신앙이 강하기 때문에 조사의 사리탑인 부도를 건립하고 조사당을 지어 역대 조사들의 영정을 봉안한다. 영정을 봉안한다는 점에서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한다.

탑

탑’이란 말은 인도의 옛말 스투파에서 유래되었는데, 그것을 졸도파, 수두파, 탑파 등으로 번역하여 쓰다가 줄여서 탑이라고 하게 되었다. 탑은 본래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에서 비롯되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후 다비(화장)를 하였는데, 그때 나온 사리를 인도의 여덟 나라에서 나누어 가져다가 각기 탑을 세우고 생전의 부처님처럼 모셨다고 한다. 이것을 근본 8탑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이때부터 사리신앙과 더불어 불탑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약 100년이 지난 뒤 인도를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야왕조의 아쇼카왕이 이전에 세운 8개의 탑을 해체한 뒤 사리를 다시 8만4천으로 나누어 전국에 8만4천개의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와서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대신 불경이나 불상 등의 법신사리를 봉안한 탑도 건립하게 되었다.
불탑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모전석탑, 금동·청동·철탑 등으로 구분된다.

단청

단청이란 본래 여러 가지 색을 써서 건조물을 장업하거나 또는 공예품 등에 채화하여 의장하는 이른바 서, 회, 화를 총칭하는 것으로 작업과정이나 채색된 상태를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대에 와서는 단청이라는 개념이 건축물에 채색 하는 일 또는 그 상태를 일컬어 한정하여 쓰여지는 경향이 있으나 고대로 올라갈수록 그 개념은 넓어지며 그 명칭도 각기 다르게 불려졌다. 즉 단확, 단벽, 단록, 단주, 단칠 등으로 불리어졌다. 또한 이러한 단청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컬어 화원, 화공, 도채장 등이라 하였으며 승려로서 단청 일을 하거나 단청에 능한 사람을 금어, 화사, 화승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단청이라 하면 건축물에 여러가지 색채로 그림과 무늬를 그리는 일을 말하며, 본래는 고대에 지배세력이나 나라의 길흉에 관한 의식이나 종교, 신앙적인 의례를 행하는 건물과 의기 등을 엄숙하게 꾸며서 일반 기물과 구분하기 위하여 의장하는데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탑, 신상, 비석 또는 고분이나 무덤의 벽화, 출토된 부장품에 베풀어진 갖은 문양 등이 단청의 시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엄 행위는 건축물과 조형 활동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으며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청, 적, 황, 백, 흑 오채(五彩)의 조화를 추구하며 시대와 사회의 미의식에 순응하여 오늘날의 단청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단청의 목적


단청을 하는 목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볼 수 있다.

1. 위풍과 장엄을 위한 것으로 궁전이나 법당 등 특수한 건축물을 장엄하여 엄숙한 권위를 나타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 건조물이나 기물을 장기간 보존하고자 할 때 즉, 비바람이나 기후의 변화에 대한 내구성과 방풍, 방부, 건습의 방지를 위한 목적이 있다.
3. 재질의 조악성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으로 표면에 나타난 흠집 등을 감출 수 있다.
4. 일반적인 사물과 구별되게 하여 특수기념물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다.
5. 원시사회에서부터 내려오는 주술적인 관념과 또는 고대 종교적 의식 관념에 의한 색채 이미지를 느끼게 할 수 있다.

단청의 종류

단청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다섯 가지 또는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가칠단청 : 건축물에 선이나 문양 등을 전혀 도채하지 않고 한두 가지 또는 서너 가지의 색으로 그냥 칠만하여 마무리 하는 것을 말하며 주로 사찰의 요사채나 궁, 능의 협문 등에 많이 쓰인다.

2. 긋기단청 : 가칠 단청 한 위에 부재의 형태에 따라 먹선과 분선을 나란히 긋기 하는 것을 말하며 경우에 따라 한두가지 색을 더 사용할 때도 있다. 간혹 부재의 마구리에 간단한 매화점이나 태평화 등의 간단한 문양을 넣는 경우도 있다. 사찰의 요사채나 향교, 서원 부속 건물의 내부등에 많이 사용된다.

3. 모로단청 : 머리단청이라고도 하며 부재의 끝머리 부분에만 비교적 간단한 문양을 넣고 부재의 중간에는 긋기만을 하여 가칠상태로 그냥 두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단아한 느낌을 준다.
주로 사찰의 누각이나 궁궐의 부속건물 정자 등에 많이 사용된다.

4. 금모로단청 : 얼금 단청이라고도 하며 머리초 문양을 모로단청보다 좀더 복잡하게 초안하여 금단청과 거의 같게 한다. 중간 여백은 모로 단청과 같이 그냥 두거나 간단한 문양이나 단색으로된 기하학적인 문양(금초)을 넣기도 한다.
그림보기

5. 금단청 : 비단에 수를 놓듯이 모든 부재에 여백이 없이 복잡하고 화려하게 도채한다고 해서 비단 금(錦)자를 사용하여 금단청이라고 한다. 주로 사찰의 법당이나 주요 전각에 많이 사용한다.


6. 갖은금단청 : 금단청과 같으나 문양이 더욱 세밀하고 복잡하며 문양위에 겹쳐서 동식물 또는 비천상 등을 그려 넣는 경우도 있으며 고분법이라 하여 문양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거나 금박을 사용하여 장엄효과를 극대화 시키기도 한다.

가장 많은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는 법식으로 주로 사찰의 중심되는 법당에 많이 사용된다.
이러한 단청의 종류는 각각 그 품격이 다르므로 단청을 할 때에는 대상 건물의 성격과 구조, 주위의 환경등을 잘 파악하여 그 격에 맞는 단청을 해야할 것이다. 일례로 부속전각이나 요사채에 금단청을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할 것이다.

단청의 기법

1. 출초(出草) : 단청할 문양의 바탕이 되는 밑그림을 ‘초‘라고 하고 그러한 초를 그리는 작업을 출초 또는 초를 낸다고 한다. 또한 출초를 하는 종이를 초지라고 칭하며 초지는 한지를 두겹이상 세겹 정도 배접하여 사용하거나 모면지나 분당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초지를 단청하고자 하는 부재의 모양과 크기가 같게 마름한 다음 그 부재에 맞게 출초를 하는 것이다.
단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바로 이 출초이며 이 출초에 따라 단청의 문양과 색조가 결정되는 것이다. 출초는 화원들 중에 가장 실력이 있는 도편수가 맡아 한다.

2. 천초 : 출초한 초지 밑에 융, 또는 담요를 반듯하게 깔고 그려진 초의 윤곽과 선을 따라 바늘 같은 것으로 미세한 구멍을 뚫어 침공을 만드는 것을 천초 또는 초뚫기라 하고 초 구멍을 낸 것을 초지 본이라 한다.

3. 타초 : 가칠된 부재에 초지본을 건축물의 부재 모양에 맞게 밀착시켜 타분주머니(정분 또는 호분을 넣어서 만든 주머니로 주로 무명을 많이 사용)로 두드리면 뚫어진 침공으로 백분이 들어가 출초된 문양의 윤곽이 백분점선으로 부재에 나타나게 된다.

불 상

불상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석가모니부처님이 입멸하시고 약 5백년후 까지는 예배 대상으로서의 불상의 제작이 없었다고 한다. 그 대신 초기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나 일화와 관계된 그림이나 부조를 조성할 필요가 있을 경우 부처님을 대신하여 불사리탑이나 법륜, 보리수, 연화좌, 금강좌와 같은 상징물들을 부처님의 위치에 표현해 놓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너무도 거룩한 분이라서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 자체가 자칫 그분의 성스러움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초기의 불상과 불화의 내용으로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본생도와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타낸 팔상도를 포함하여 여러 일화들을 묘사한 불전도가 있다

‘불상’이란 말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의 존상을 뜻하므로 좁은 의미에서는 부처님 즉, 진리를 깨닫고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여래의 형상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사찰에서 봉안하고 있는 각종의 보살상과 나한상 및 불교의 수호신인 신중상도 불상에 포함된다. 따라서 여래상, 보살상, 신중상, 조사상 등 불교교리와 관련된 모든 형상의 조형물들을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상은 용도에 따라 여래상, 보살상, 제신상, 나한상 등 예배용과 후불 목각탱, 불단과 대좌의 장식 등 장엄용 및 불전도, 본생도, 변상목각상, 다라니판, 변상경판 등 교화용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불상의 재료로는 흙, 나무, 천, 종이, 돌, 옥, 금속 등이 쓰인다.

흙으로는 토기나 자기의 재료를 이용하여 소조불을 조성한다. 불상 조성에 사용하는 나무로는 은행나무, 느티나무, 피나무, 춘양목, 전단향나무 등이 있으며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 노사나불 등의 여래상과 관세음, 미륵, 문수, 보현 등의 보살상은 결이 곱고 목질이 견고한 것을 선택하여 조성한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목재들도 사용되는데 홍송, 백목, 황송, 알마시카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 천으로는 건칠(옻칠)불을 조성하고 종이(닥종이)로는 지불을 조성한다. 또 돌로는 부석(불석), 화강석, 곱돌(대리석), 사암 등이 주로 쓰이고 옥으로는 비취, 호박 등을 이용하여 호신불을 조성하며 금속으로는 철, 구리, 주석 등이 주로 이용된다.

불 화

불화는 불교의 이념과 교리에 입각하여 중생교화를 주 목적으로 제작된다. 그러므로 심미주의적인 아름다움이나 추상적인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일반미술과는 달리, 불화의 영역은 불교교리와 사상을 주제로 한 성스러운 평면 조형예술로서 표현된다. 따라서 불화의 특성은 결국 경전의 내용을 시각적인 형상으로 표출하는데 있으며, 더불어 경전의 극적인 장면들을 생동감있게 묘사하기도한다.

불화는 용도에 따라 후불탱화, 괘불, 신중탱화, 영정 등 예배용 불화와 후불벽화, 건조물의 단청 등 장엄용 불화 및 불전도(팔상도), 본생도, 극락왕생도, 감로도, 지옥도 등 교화용 불화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탱화(幀畵)라 함은 글자 그대로 벽에 거는 그림을 뜻하며 벽에 직접그린 그림은 벽화로 구분된다.

불화의 바탕재료로는 천, 종이, 흙, 나무, 돌, 금속 등이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가장 보편화된 불화의 바탕재료는 비단·삼베·모시 등의 천을 들 수 있는데, 특히 불상의 후벽에 걸리는 후불화와 야외용의 괘불탱화는 거의가 천바탕에 그려지고 있다. 또한 사경화(寫經畵)와 변상도 등은 화선지·순지·장지·감지·홍지등의 종이바탕에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나무에 부조(浮彫)로 양각하고 그 위에 개금이나 채색을 하여 후불화로 봉안하는 것을 후불목각탱화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문경 대승사, 상주 남장사, 예천 용문사, 남원 실상사 약수암 등의 목각탱화가 유명하다.

벽에 불화를 그린 것을 불벽화라 하는데, 전통적인 불벽바탕의 재료로서 흙(회)벽·나무(판)벽·돌(석)벽등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찰건물의 벽에 회사무리를 바르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시멘트로 미장하고 있어 근래에 제작된 벽화는 시멘트바탕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바, 그림의 보존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따르고 있다.

우리 나라 전통사찰 건물의 대부분은 토벽을 지닌 목조건물이므로 사원벽화는 흙벽면에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흙벽에 그려진 불벽화로는 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 강진 무의사 극락보전 벽화, 안동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 양산 통도사 다보탑벽화 등이 유명하다.

또한 목조건물의 외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붙여진 판벽위에 그려진 불화를 판벽화라고 하는데, 판벽화는 대체로 수명이 짧기 때문에 연대가 오래된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며, 파주 보광사 판벽화, 의정부 흥국사 판벽화, 해사 운부암 판벽화 등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돌벽화는 석굴사원의 돌벽에 그려진 것인데 우리 나라의 경우 기록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유래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인도의 아잔타석굴, 중국의 돈황과 운강석굴, 중앙아시아의 여러 석굴벽화가 오랫동안 전해지고있다. 그 밖에도 철이나 청동등의 금속표면에 은입사(銀入絲)를 하여 불상을 표현하거나 모각화를 조성하기도 한다.


해인사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 남서쪽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합천 해인사는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가야산 기슭에 있다. 그 이름은 《화염경》에 나오는 ‘해인삼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해인삼매’란 세상을 끝없이 넓은 바다에 비유해 마음의 번뇌가 사라질 때 우주의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 비치는 경지라는 뜻으로 일체를 깨달아서 아는 부처의 지혜, 곧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모습이다.

해인사는, 승려 순응과 그의 제자인 이정이 애장왕과 그의 할머니인 성목왕태후의 도움으로 통일신라 애장왕 때인 802년에 세워졌다.
중국 양나라 때, 지공 화상이 죽음에 이르자 제자들에게 《동국답산기》를 주면서 고려의 두 승려가 법을 구하러 오면 이 책을 전해 주라고 유언하였다. 그 뒤 신라의 순응과 이정이 법을 구하러 중국에 갔는데, 지공의 제자들에게서 책을 건네 받고는 지공의 묘소를 찾아가 기도하며 법문을 청하였다. 어느 날, 묘가 열리면서 지공이 나와 지금의 가야산인 우두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돌아가 대가람 해인사를 세우라는 말을 남기고 탑 안으로 사라졌다. 두 승려는 우두산의 맑은 물이 고인 이곳에 이르러 선정에 들어가자 이마에서 신령한 빛이 나 그 기운이 하늘로 뻗쳤다. 그때 애장왕의 왕후가 등창병이 났는데 약의 효력이 없어 왕은 신하들에게 고승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우두산에서 선정삼매에 들어가 빛을 내는 승려들을 보고 사연을 말하자, 승려는 오색실을 주면서 실의 한 끝은 궁전 뜰의 배나무에 매고 다른 쪽은 아픈 곳에 대면 병이 나을 거라고 하였다. 승려의 말대로 하였더니 배나무가 말라죽고 왕후의 병이 낫게 되어 애장왕은 전답을 내리고 해인사를 짓게 하였다고 전한다.
신라 왕실의 후원으로 세워진 해인사는 희랑 대사가 고려 왕건을 도와 후백제를 물리친 공으로 태조에게서 논밭 500결을 받아 사찰을 중창하였다. 조선 세조 때는 장경각을 확장하였고, 학조 대사가 성종 때인 1488년에 대장경판당 등을 중건하였다. 그 뒤에도 화재와 중건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이라고도 부르는 장경판고는 화를 입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장경판고는 불경을 인쇄하기 위한 목판을 보관하는 전각인데, 해인사 대적광전 뒤 높은 곳에 있는 장경판고는 수다라장과 법보전 및 서사간고와 동사간고의 네 동(棟)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장경판고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대장경판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대장경판은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자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려 고종 때 대장도감에서 만들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경판은 8만 1258판 정도이고 8만 4000 법문을 수록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대장경판은 강화도에서 만들어 강화 선원사에 보관되었으나 조선 태조 때 서울 지천사로 옮겼다가 곧 합천 해인사로 옮겨 봉안했다.
그 때부터 석가모니의 말씀을 모신 해인사는 법보종찰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한편, 해인사 장경판고와 대장경판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부석사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시기:676(신라 문무왕 16)
창건사;의상조사

단양팔경을 거쳐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을 지나면 봉황을 닮았다는 봉황산 중턱에 자리잡은 부석사를 만난다. 신라시대인 676년 의상 대사가 문무왕의 뜻에 따라 세운 부석사는 한국 화엄종의 중심 사찰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의상 대사와 당나라 처녀 선묘의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의상이 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 등주 해안에 도착해 한 신도의 집에 머물렀는데, 이곳에 사는 선묘라는 처녀가 의상을 흠모하였다. 의상이 장안의 종남산에서 지엄 대사에게 화엄학을 배운 뒤 신라로 떠나려 하자, 선묘는 의상이 탄 배를 향해 법의가 담긴 상자를 던져 전했다
지금도 무량수전 뒤에는 공중에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의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이는 선묘의 화신이라고 전해온다. 의상을 연모한 선묘가 의상을 보살피고 불법을 수호하는 용이 되었으며, 용이 변한 바위를 부석이라 하고, 선묘의 도움으로 세운 이 사찰을 ‘부석사’라고 하였다. 부석사에는 선묘의 영정을 모신 선묘각이 있고, 부석사 무량수전 아래 묻혀 있는 ‘석룡’을 이 절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부석사는 고려시대인 1016년에 원융 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고, 1372년 부석사 주지가 된 원응 국사가 우왕 때 보수하고, 1377년에는 조사당을 다시 세웠다. 조선시대인 1580년 사명 대사가 사찰을 고쳐 지었고 영조 때의 큰 화재로 만월당, 만세루, 범종각 등이 불에 타 중건하였다. 1916년에는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해체·수리하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일주문, 천왕문, 숭당, 응향각 등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물인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본전으로 아미타여래인 소조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단층 팔작지붕을 한 무량수전은 지붕 추녀와 기둥 중간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기둥의 조화가 특히 아름답다. 건물 가운데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게 한 안허리곡과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기둥의 안쏠림,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가 가운데보다 높은 귀솟음 수법으로 처리하여 한층 돋보인다.

조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의상 대사의 초상화가 있다. 그밖에 원융국사비와 부석사 고려각판,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 3층석탑, 무량수전 앞 석등, 고려 말기에 그린 부석사 조사당벽화 등이 있다.



사찰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또 한번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 하나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사찰에는 숨어 있습니다.
사찰에 관한 이미지와 가람배치에 관한 것도 있는데 사진첨부가 안되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퍼옴] 희망 버린 마음 한국스님이 감쌌다 
[기사] 비구니 선사 영암당 인허 스님 입적 
 
 



108인회 워크숍

가족지원센터 부부템플스테이

교정교화센터

날란다독서모임

미술심리치료

명상리더십 부처님상담법

새활용공모전

새활용패션쇼

연구소 응원한데이

연구소학술세미나

위즈덤합창단

지혜아카데미

행복가족센터 전등사 순례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30길 20(청운동 103번지) 불교여성개발원 1층
전화 : 02)722-2101~2 / 팩스 : 0502-722-2000
e-mail : wisdom2007@daum.net / 사업자등록번호 : 101-82-11320 / 대표자 : 정대련
copyright(c)2010 불교여성개발원 Buddhist Women's Development Institute all right reser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