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종교'라는 감옥서 나와야 화합 실현"
세계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2-12-25 18:10
[세계일보] “사람들이 ‘내 종교’라는 감옥에서 빨리 다 나와야 합니다. 내가 믿는 종교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족쇄를 과감히 풀어버려야 해요.”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불교여성개발원의 새 원장을 맡게 된 정경연(57)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의 말투는 단호했다. 30여 년간 장갑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에 매진해 ‘장갑 작가’로 유명한 그는 이중섭미술상(2008)과 여성예술작가상(2012)을 받은 중견 미술인이다. ‘예술가’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내성적인 성격과 조근조근한 어법을 기대한 기자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릴 적에는 미션스쿨에 다니며 성경을 열심히 배웠어요. 1980년대 초에는 가톨릭반 학생회 지도교수를 맡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주재한 1박2일 피정 행사에 다녀온 적도 있죠. 저는 불교 신자이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습니다. 종교는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고, 모든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자비·사랑·봉사라고 생각해요. ‘내 종교’라는 감옥에 갇혀 남의 종교를 배척하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요.” 정 원장의 외조부는 제헌의원 등 5선 의원과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낸 우촌 전진한(1901∼1972) 선생이다. 우촌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한때 승려처럼 불도를 닦은 적도 있다. 외갓집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정 원장이 남녀차별에 대한 의식 없이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정경연 신임 불교여성개발원장은 “불교 경전은 한자가 많아 일반인들한테 어렵게 느껴진다”며 “쉬운 불교, 편안한 불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딸도 제사에 참여시키는 등 남녀 구분없이 키운 부모님 덕분에 성차별을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1980년에 홍익대 교수가 되고 보니 주변에 여교수가 너무 없더군요. 그때부터 여성이란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죠. 저는 여성운동가는 아니지만 전국여교수연합회 회장 등을 맡으며 여권신장에 나름 애썼습니다.”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한 바깥 사회와 비교할 때 조계종 내부의 남녀평등 실현은 아직 요원하다. 일례로 81명의 중앙종회 의원 중 비구니(여성) 스님은 고작 10명뿐이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는 앞으로 여성들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 21세기에 걸맞은 종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불교여성개발원은 산하에 ‘여성불자 108인회’, ‘영(Young)108인회’, ‘승만경연구회’, ‘웰다잉(well-dying)운동본부’, ‘사찰음식문화센터’ 등 여러 기구를 두고 각종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정 원장은 “다문화·환경오염·성폭행 등 사회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종교가 불교”라며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가르침대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 불법을 전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