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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보살 자비 원력에 사형수가 미소를 짓다   2010-09-28 (화) 11:11
불교여성개…   7,927

- 불교여성개발원 승만경연구회 이인자 회장 : 법보신문 인터뷰 기사(제1061호 2010년 08월 25일 수요일) -

< 승만보살 자비 원력에 사형수가 미소를 짓다 >
- 승만경서 재가여성의 삶 찾아
- 연구·사경 등 보급 적극 나서

승만경연구회 이인자 회장이 승만 보살에 빠진 이유는 승만 보살의 10대원 때문이다. 가난한 중생들에게 베풀겠다는 마음과 고독하고 갇혀있거나 질병 있는 이들을 돌보겠다는 승만 보살의 자비심에 탄복했다.
정체성이 필요했다. 혹자는 불교가 치마폭에 쌓여 있단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사부대중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일터. 모두 부처님을 닮고자 발원하고 마음 속 불성을 깨닫고자 애쓰는 중생 아니었던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더 간절해졌다. 한국불교 재가여성들을 위한 정체성. 불교여성개발원 초대원장을 맡으면서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숙제였다. 고민하고 헤매는 것은 길을 찾는 여정일 뿐이었다.

『승만경』을 만났다. 재가여성으로서 승만 부인이 부처님에게 수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았다. 승만경연구회 이인자(71, 능인행) 회장의 반색도 잠시. 그는 승만 보살이 여성 불자로서의 이상적인 삶과 결부되는 10대원을 알고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탁! 무릎을 쳤다. 그는 『승만경』을 불교여성개발원 소의경전으로 만들고자 여기 저기 경전을 알리며 무던히 애쓴 끝에 원을 이뤘다.

“조계종은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잖아요. 재가여성들만을 위한 경전과 삶의 실천 규범들이 필요했고 간절히 원했어요. 2008년 불교여성개발원 이사회에서 『승만경』을 소의경전으로 공식 채택하면서 재가여성들의 신행을 비롯한 교리의 근본 경전을 이제야 찾은 거예요.”

그가 승만 보살에 몰입한 이유는 승만 보살의 10대원 때문이다. 계를 범하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 인색한 마음 그리고 시기와 질투, 분노, 증오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서원의 매력에 푹 빠졌다. 또 스스로를 위한 재물보단 가난한 중생들에게 베풀겠다는 마음과 고독하고 갇혀있거나 질병 있는 이들을 돌보겠다는 승만 보살의 자비심에 탄복했다.

때문에 그는 온갖 열의를 다해 『승만경』을 배우러 각지를 돌아다녔다. 대구서 지운 스님의 강의가 있을 땐 아침 7시에 일어나 대구로 향했다. 일흔이라는 나이에도 4개월 동안 한 번도 수업을 빠진 적이 없었다. 유난히 극성인 그의 열성을 남편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승만 보살의 10대원을 갈무리해 재가여성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승만 보살 10대 서원 수행정진’ 3년 결사를 가졌다. 12월 22일까지 300일 동안 승만 보살 10대원을 매일 독송하고 앞으로 3년 동안 『승만경』 강의와 이해, 사경, 우리말 번역을 통해 보다 많은 재가여성들이 승만 보살의 삶을 실천할 계획이다. 무릇 재가 여성이라면 그리 살아야 한다고 그는 굳게 믿는다.

그가 10년 째 사형수 담당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는 이유에도 중생을 보듬는 승만 보살의 원이 담겼다. 사형수라는 범죄자를 여자의 몸으로 대하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러나 그는 이생의 살생 악업이 켜켜이 쌓인 사형수들을 만나 철장 속에 감춰진 그들의 불성을 일깨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고마움을 전하는 사형수들의 마음은 물론 교화활동 1000일 회향 때마다 1명 씩 무기수로 감형되는 부처님 가피까지 입었으니 열일 제쳐두고 구치소를 찾게 된다고. 부처님을 만나 1000번째 살인을 멈추고 삼보에 귀의한 앙굴 마라 이야기의 현대판이 예 있었다.

그는 사형수 가운데 그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이의 얘기를 꺼냈다. 2004년 봄, 서울구치소 법당에서 만난 사형수 혜담(법명) 씨가 따로 만나자고 청해왔다. 혜담은 2000년 살인죄로 사형이 확정돼 4년째 수감돼 있었던 사형수였다. 혜담은 평소 종이에 아무 그림이나 끼적이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경기대 명예교수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얘기를 듣고 혜담은 그에게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물었다.

- 미술 상담 치료로 사형수 교화
- 불교라면 열 일 제쳐두고 참여

“혜담 법우를 만났더니, 그가 빨래비누로 조각한 부처님을 내밀었어요. 거칠었지만 진짜 부처님이 앉아 계신 듯 아주 잘 만든 부처님이었지요. 정말 그림이 그리고 싶은지 묻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하려면 선 긋기부터 시작하라고 했어요.”

우선 가로, 세로 선 긋는 것부터 계란 100개를 그리라 했다. 혜담은 이내 계란을 그렸고, 지난 주 드디어 100개를 다 그렸다. 그는 혜담의 계란 그림을 보고 아마추어 작가 이상의 실력이라고 평했다. 내친김에 혜담의 작품 주제를 ‘계란’으로 정하고 작품전을 위한 작품을 그리기로 했다. 그러나 묻자. 왜 하필 계란일까.

“변화무쌍한 빛의 변화까지 관찰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는 계란만 한 게 없어요. 빛과 어둠을 다루면서 삶이 왜 아름다운지 깨닫고, 그림을 그리며 인내와 참회를 배울 수 있지요. 해를 입혔던 분에게 참회하는 마음을 담아 그리라고 했어요.”
혜담은 변해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난 1월 여러 해 모은 영치금 300만원을 부산 자비사 스님을 통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기부와 함께 불펜으로 눌러쓴 편지에는 혜담의 바람이 담긴 글이 적혀 있었다. “다시는 저와 같은 사람이 없길 바랍니다.”

사실 그는 불교를 미신이라 여기고 싫어했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까닭에 어머니가 무던히도 절에 올라 기도를 했던 것. 딸을 위해 어머니는 절 한 곳만 60년이 넘게 다녔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머니 손을 잡고 절에 오르곤 했다. 시간은 흘렀고 불교는 잊혀져 갔다. 헌데 불연은 참 질기다. 경기대 교수로 재임하던 중 교수불자연합회 활동을 시작했다. 무작정 능인선원으로 가 경전을 동화로 풀이한 책을 통해 처음으로 경전을 접했다. 여기저기를 쫓아다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공이 쌓이자 쓰임이 생겼다.

교수불자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불교여성개발원 초대원장, 중앙신도회 불교인재원 이사를 지냈다. 불교상담대학 총 동문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차명상협회(이사장 지운) 이사로도 참여 중이다. 불교계 단체 심벌도 그의 손을 거쳤다. 시각디자인계의 1.5세대로 한 획을 그었던 그의 전공을 살린 것이다. 불교여성개발원과 지혜로운 여성, 한국차명상협회, 불교인재원 심벌도 그의 솜씨다. 인터뷰 내내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그 때마다 웃으며 흔쾌히 응하는 그의 모습엔 에너지가 넘쳤다. 일흔 하나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고 했더니 손사래다. 마지막 원을 묻자 역시나 승만 보살이다.

“고통 받고 삿된 중생을 구제하고 화내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승만 보살의 10대원은 우바이들이 지녀야할 모든 원이 다 들어있어요. 모든 우바이들이 승만경을 공부하고 승만 보살 10대원을 수지 독송하는 날이 이번 생에 오지 않는다면 다음 생까지 꼭 이루고 싶어요.”

그냥 부처님만 붙잡고 있다며 또 웃는다. 세상도 따라 웃는다.

- 최호승 기자

 

승만경 대중화 위해 교재 개발 
승만보살10대원 수행정진 100일 회향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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