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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여린 아이?
직장을 그만 두고 민규와 나는 참 행복했다. 민규를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다. 강의, 법회, 수련회 등. 아이는 마냥 행복해하며 따라 다녔다. 따라가면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한 두 시간 혼자서 지내야했는데도, 종이와 연필만 주면 그림 그리며 시간을 잘 보냈다. 그럴 때 나는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 그래서 어디를 가는지 물을 필요도 없고, 꼭 상대해 주지 않아도 좋은 것. 그것이 사랑이구나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서 참사랑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토록 진실한 사랑을 받고 있음에 스스로 감동하고, 아이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아이는 나만 있으면 무조건 좋아했다. 나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고, 귀찮게 하지도 않았다. 내가 명상을 하고 있으면 옆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사람들이 “신통한 아이”라며 칭찬하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이렇게 좋게만 보이던 민규의 차분하고 온순한 성격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 전혀 다른 문제로 바뀌었다. 민규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거친 말과 행동을 하는 친구, 욕심을 부리며 장난감을 혼자 독차지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지 못하고 늘 참고 기다리다가 결국은 마음이 상해서 다니기 싫어하곤 했다.
반대로 어릴 때 자기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서 엄마를 힘들게 했던 아이들의 경우 오히려 밖에 나가서는 당차고 야무져서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을 보았다. 결국 좋은 성격, 나쁜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좋아할 일도 싫어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론일 뿐, 현실에서는 참 어려운 문제이다.
민규가 오늘은 “한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짜리 남자아이가 욕하고 때린다”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상담을 해왔다. 이럴 때 나는 참 당혹스럽다. 평화롭고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는 생각과 ‘민규가 좀 더 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고난 기질에 맞게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걸 알면서도 민규에게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해서 채워 주어야 할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민규와 함께 동화책을 읽으며 지혜와 용기, 그리고 관용이 훌륭한 덕목임을 깨우쳐 주려고 노력한다.
불교여성개발원 연구과장
한주영(hjy314@hanmail.net )
< 법보신문 2003-04-16/7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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