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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은 정, 기른 정
갓난 아이 돌보며 '모성애 = 보살핌' 느껴
'낳은 정이 먼저냐 기른 정이 먼저냐'라는 말이 있다. 양쪽이 모두 그만한 무게가 있기에 생겨난 말일 것이다.
처음부터 아이는 부모님께서 맡아 키우기로 돼있었고, 나는 몸조리만 끝나면 다시 취직을 할 계획이었다. 어머니는 젖몸살을 심하게 앓으신 경험이 계셔서 나보고는 아예 젖을 먹이지 말라고 하셨다. 중간에 젖 떼려면 엄마도 고생, 아기도 고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퇴원을 하고 집에 와서 아이를 안는 순간 젖을 먹이고 싶었다. 그때는 이미 젖 마르는 약을 먹은 후였기 때문에 돌이킬 수가 없었다. 3.3kg의 너무나 연약해 보이는 갓난아기를 보며 젖을 먹일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약을 먹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낳은 정과 기른 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 병원에서 아이를 보았을 때, 아이는 그냥 아이로 존재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에 배가 아팠던 상황과는 별개의 상황처럼 느껴졌다. 내가 낳았다거나, 내 핏줄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그 여린 존재를 보살필 때 나는 본능적인 모성을 느꼈다. 그래서 결론 내렸다.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이라고. 물론 이건 순전히 내 경험일 뿐 보편적인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
자식은 부모의 몸을 빌어서 세상에 왔을 뿐이며, 부모와 자식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엄밀한 독립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모성도 혈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생명을 살리고 보살피는 공적인 관점으로 볼 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장애가 되는 집착이나, 이기적 가족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여성의 모성본능을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같이 보다 넓은 영역의 보살핌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절 집에서 여자 신도를 보살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한주영<불교여성개발원 연구과장 hjy314@hanmail.net>
< 법보신문 2003-03-05/6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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