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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운 마음에
타인을 초대할 때
무한 자비심 생겨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로 한국 불자들로부터 덕망을 받고 있는 뗀진 빨모 스님이 불교여성개발원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뗀진 빨모 스님은 6월 30일부터 7월 13일까지 도선사를 시작으로 청암사, 운문사, 동학사 승가대학과 문화세상 이프토피아, 밝은세상 명상아카데미에서 강연한다. 법보신문은 도선사와 봉은사(7일), 불광사(10일), 능인선원(18일) 법석에서 펼쳐지는 뗀진 빨모 스님의 강연 요지를 4회에 걸쳐 요약 게재한다. 뗀진 빨모 스님은 6월 30일 도선사에서 ‘일상생활속에서의 자비실천’을 주제로 첫 강연했다. 편집자 주
우리는 일생동안 남 탓을 많이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처님도 말씀하셨듯이 고통의 원인은 나의 마음 즉 우리의 내부에 있습니다. 지금의 생활이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데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 하지만 똑같은 인생을 되풀이 하고 맙니다. 지금 여기서의 어리석은 마음을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발 두개에 신발 400켤레
현대사회에서 맑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이는 사회 환경에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 텔레비전과 신문 등의 각종 대중매체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기는커녕 삼독을 더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폭력과 소비심리를 부추기는 영상을 우리는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보고 있습니다. 대중매체의 이러한 독은 우리의 마음속 저변에 자신도 모르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최근의 미국 통계를 보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학생들의 텔레비전 시청시간은 총 2만5천 시간입니다. 인간 상호간에 총을 쏘고, 폭력을 휘두르며 살인하는 장면들을 그들은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재미있어 하며 보고 있습니다. 한 발의 총소리도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해 지워지지 않는 지문을 남기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수십,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만든 광고를 5분만이라도 보십시오. 우리 일상에서 극히 필요 없는 것 까지도 광고는 사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한 지우로부터 자신이 갖고 있는 신발이 4백 켤레라는 놀라운 말을 들었습니다. 발은 두 개인데 신발 4백 켤레가 왜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것들은 모두 불타는 삼독심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삼독 중에서도 집착은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이 어떻든 나는 성공해야만 하고, 남이 어떻든 나는 많은 돈을 가져야만 하고, 다른 사람은 몽매해도 나는 잘나야만 한다는 집착은 다른 어떤 무지보다 더 곤혹스럽게 합니다.
청소년 자살 순위로 볼 때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가 1위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이전에 비교해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지만 마음속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1세기의 세계를 보십시오. 역사상 그 어떤 젊은이들이 지금처럼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렸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말합니다. 역사상 그 어떤 노인들이 지금처럼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렸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역사상 가장 불행하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탐심은 짠 바닷물과 같아서 다 마셔도 만족을 모를 것”이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삶에 관심이 없습니다.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지 못하고 미래만 바라봅니다. 승진하면 더 좋은 차와 집을 사서, 친구들과 동료들이 자신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게 해야지 하는 것 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미래에 행복이 있다는데만 몰두하는 그들은 지금에 열중하지 않고 현재 이 순간 살아있는 느낌을 외면한 채 자신을 무감각하게 하고야 맙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텔레비전만 보는 것입니다.
폭력과 마약, 범죄가 난무하는 거리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면서 운전을 하고 있는 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불자들은 나의 일터, 가정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타인의 마음을 가져보라
우리는 단번에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나의 세상은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변하면 내 가족과 내 직장동료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변화를 이끄는 힘은 바로 자비에서 나옵니다. 자비란 근원적으로 남들과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남의 행복과 고통 모두를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자신의 남편과 아내, 부모님 자식 또는 형제, 자매 그 누구도 고통을 원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할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들이 고통 없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으로 가족 중 한 분을 그려보세요. 아이들을 그려볼까요? 생각으로만 그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침에 아이를 나무라는 아빠 엄마가 아니라 그 아이 입장에서, 부모가 무엇을 해주었으면 하는가 하는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겁니다. 아이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요? 어떤 사랑을 받고 싶어 할까요? 직장에서 돌아온 부모는 먹을 것을 조금 사와서는 텔레비전을 켠 채 아무런 대화도 없이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가 된 여러분은 그런 생활을 원하고 있습니까?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나누려 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나만의 정체성을 잠시 비우고 남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고통은 자신의 내면에서 불거져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읽어낼 수 있고 다독거려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비실천입니다.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갈 때 일어나는 마음도 자비이지만 자비는 그보다 더 심오한 것입니다.
새의 날개가 둘이듯이 자비와 지혜는 하나이면서 둘이어야 합니다. 자비심을 가질수록 지혜는 더욱 높아가고 지혜가 깊을수록 자비는 더욱 충만해져 갑니다. 자신의 문제로 자신의 내부 마음이 들끓으면 자비와 지혜는 샘솟지 않습니다. 잔잔한 마음을 가져야 주변 사람의 고통이 보이고 타인의 고통을 알아야 자비심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자비란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보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삶 속에서 이것을 해야 하겠다는 의지와 이것을 하고 싶다는 희망에 매여 있습니다. 또한 이와 함께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결국 희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삶이란 본질적으로 불안한 것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가 죽을 것이라는 것 하나만이라도 절실하게 안다면 자비심을 내기가 그만큼 쉬울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얽매임을 푸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뀝니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달라이 라마 성하께 “금생에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질문하자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는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내 앞에 놓으라는 것”이라 답했습니다.
내 마음 감옥서 벗어나야 행복
내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 때 행복은 시작합니다. 나 자신을 평화롭게 하는 가운데 타인의 고통을 볼 수 있고 자비심을 낼 수 있습니다. 마음과 행동 하나도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할 때 우리는 불자의 길을 제대로 가는 것입니다. 당장 참선이나 명상은 하지 못한다 해도 작은 자비 실천은 우리 일상에서 언제든지 실천 할 수 있습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뗀진 빨모 스님은
1943년 영국에서 태어난 스님은 어느 날 티베트 불교 소개책자를 보는 순간 불교에 심취하기 시작해 1963년 20세 때 불교 공부를 위해 인도로 발길을 향했다.
이듬해인 64년 티베트 불교 제8대 활불로 추앙받던 캄트룰 린포체를 만나 사미니계를 받은 후 6년 동안 스승의 지도로 공부한 후 히말라야 라훌에 소재한 작은 승원에서 6년 간 수행했다. 이후 또 다시 인근 산속 석굴에서 12년간 정진했다.
캄트룰 린포체는 입적 전 1980년 뗀진 빨모 스님에게 비구니 승원을 설립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뗀진 빨모 스님은 타시종에 동규가찰링 비구니 승원을 설립하고 매년 3개월간 해외에서 법문을 하며 비구니 승원 운영기금을 모으고 있다.
<2005-07-06/810호>
입력일 : 2005-07-0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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