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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 영감의 원천,후학양성으로 '회향'"-한기늠 조각가   2012-11-13 (화) 11:56
불교여성개…   5,142

55 한기늠 조각가(대담=진우기 한국불교영어번역연구원 초대원장)

2012년 05월 11일 (금) 17:49:18 정리=최연순 기자, 사진=이강식 기자 comingsoon@ggbn.co.kr


불교의 구도정신과 동양적 세계관을 서양적 기법으로 표현하면서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기늠 조각가. 불교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에게 불교와 예술의 접점에 대해 물었다. 편집자

“수행이 영감의 원천, 후학 양성으로 ‘회향’”


▲ 한기늠 조각가는 ‘불자 조각가’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수행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진우기(이하 진): 대리석을 이용해 구도와 성찰, 자연과 하나 된 인간을 투영하면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치고 계십니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한기늠(이하 한): 조각에 색채를 가미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참 재미있어요. 다 같은 돌 같지만 화강석도 16가지 종류가 있거든요. 무늬가 고운 인도석이나 브라질석에 색칠을 해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 의뢰가 들어오면 그림도 그리고, 예전부터 하던 대리석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진: 마흔 살의 나이로 이탈리아 유학을 결정하셨습니다. 언어의 장벽, 만만치 않은 유학비와 생활비 등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안정된 삶을 놓아버리고 떠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한: 처음 미술학원을 찾은 건 꽃꽂이 구도를 위해 데생을 배우려는 마음에서였어요.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술학원을 찾았더니 선생님이 미대 입시를 준비하자고 권유하셨습니다. 내친 김에 그러자하며 3년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하루에 15시간 동안 데생을 했어요. 새벽 5시에 단과학원 제일 앞줄에 앉아서 강의를 듣고 집에 갈 때면 수위아저씨들이 “아이고 수고 많으십니다”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그렇게 신라대에 2차로 합격했죠. 학교를 다니면서 홍대와 서울대 학생들을 쫓아다니다보니 이탈리아 유학에 대한 꿈을 꾸게 됐습니다.

지금은 만학도가 많지만 그 때는 흔하지 않았습니다. 1986년, 대학에서 꽃꽂이를 가르치면서 돈을 엄청나게 벌 때였는데 다 관두고 갔으니 어떻게 보면 대단하기도 했겠죠. 제가 떠나면서 그랬어요, 지금 꽃꽂이로 100원 손해보고 돌아와서 조각으로 1000원 벌겠다고. 그런데 참 신기하죠. 제가 떠나고 나서 1992년부터 정말 꽃 문화가 사양세에 접어들었거든요.

진: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한 것에 이어 인도 타고르 대학원에서 수학하셨습니다.

한: 공부를 시작한 김에 50살까지 대학원 공부를 마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제가 공부한 이탈리아 까라라는 당시 대학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헬리무어 왕립미술학교를 지원했는데 생활비와 학비가 너무 비싸서 3개월 만에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됐죠. 인도 대학시스템이 영국 교육과 유사했고, 마침 타골에서 유학을 보내 선진 조각 기법을 배워온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인도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게 됐습니다. 영국에서는 당시 1년에 학비가 1650만원이었는데 인도에서는 1만 2500원이더군요. 인도에서는 청동작업을 많이 했고, 이탈리아 청동공장에서 배웠던 기법을 인도에서 성공시키고 논문도 남기고 돌아왔죠.

진: 수행자의 구도를 줄곧 작품의 주제로 사용하셨고, 자연에의 경외를 통해 궁극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깊은 사유가 작품에서 엿보입니다. 이런 구상은 평소 수행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 아침에 혼자 예불을 보다가 흰 구름 보면서 영감이 떠오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목욕탕에서 사람을 보고 작품이 떠오르기도 해요. 이탈리아의 집에서는 왼편으로는 지중해를 볼 수 있고, 오른편으로는 알프스를 마주볼 수 있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를 보면서 새소리를 듣고, 집 앞에 비파나무에서 떨어진 비파잎으로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되기도 하구요. 저는 주로 제 주변에서 소재와 영감을 얻어요.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할 때는 밥을 네 끼를 먹어도 배가 고파요. 또 어떤 때는 한 끼도 먹지 않고 무아지경의 상태로 내리 작업만 할 때도 있죠. 그렇지만 무엇보다 기도가 없이는 작품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108배를 하고 또 참회문을 읽으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불교작품을 하게 됐어요. 전 종교와 예술을 모두 얻은 행운아인 것 같습니다.


▲ 한기늠(59)                    진우기(59)
신라대 예술대학 조형미술과 졸업           서울대 사범대 졸
이탈리아 국립 까라라 미술대 조각과 졸업        미국 Texas A&M대 평생교육학 석사
인도 국립타고르대학 조각과 졸업           한국불교영어번역연구원 초대원장
전 동아대학교 예술대학 강사             역서 〈화해〉, 〈힘〉, 〈고요함의 지혜〉 등



진: 구인사와 천태종에 특별한 인연담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 2006년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동생이 “구인사 가서 장독대 한 번 봐봐라, 진짜 대단하다더라”하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15년 동안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기도를 해왔는데 구인사가 관음신앙이라는 것에도 끌렸구요. 올케와 구인사에 갔는데 상월원각대조사님이 득도하셨다던 4층 법당에서 웬 사람들이 까맣게 앉아서 개굴개굴하듯이 관세음보살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워서 기도소리도 못 냈어요.

그렇게 구인사를 다녀오고 나서 명성 스님의 유발상좌들이 부산에 내려올 일이 있다며 구포역에서 맞아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날이 제 아들 생일이었는데 제가 다른 절에 생일불공을 올려뒀었거든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구포역도 아니고, 이름을 올려둔 절도 아닌 삼광사로 운전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두 곳을 모두 제쳐두고 삼광사에 가 보니 마침 그 날이 법회날이었습니다. 처음 법회에 나온 신도에게 당시 주지 스님이셨던 영제 스님께서 염주를 걸어주시고 천태신앙의 첫걸음이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그 책을 펴보니 상월원각대조사님께서 1942년에 초막을 짓고 수행에 들어가 12월 29일에 백련밭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득도하셨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작업하던 이탈리아 작업장에서 7킬로 거리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백련밭이 있는데 제가 그 곳에서 수월관세음보살님을 만나 뵙고 불교 작업을 시작하게 됐었거든요.

한국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3천배를 했고, 2008년에는 구인사 4박 5일 기도를 1년 동안 한 달도 안 빠지고 매달 했어요. 한 달에 열 흘이 넘게 절에서 살았죠. 부산 삼광사에 다니면서 백만독 결제도 마쳤습니다. 아마 그 기도 내공이 앞으로의 작품에서 발현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 미술, 음악 등 예술분야에서는 기독교가 득세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자 조각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운 적은 없으셨습니까?

한: 저는 그 이름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불교작품을 시도할 때 같이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팔리지도 않는 작품을 왜하냐고 묻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10년 원을 세웠는데, 돌아보니 12년도 넘게 불교작품을 하고 있더라구요. 앞으로 안 해야지 해도 또 불교작품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아 내가 부처님 가피를 입었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서 현대조각을 하는 사람들도 불교색채를 띤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15년 후에는 한국에 귀국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싶다는 원을 세웠는데, 정말 15주년을 맞아 한국에 돌아왔어요. 유럽에서 작품전을 하면 유럽사람들이 눈을 감고 작품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느끼곤 합니다. 그들은 제 작품에서 평온함을 느낀다고 해요. 제가 처음 바랐던 건 부자가 돼서 소년소녀 가장도 돕고 재보시를 많이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작품을 대중화해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맑고 밝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 재가불자로서, 그리고 조각가로서의 ‘회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제가 88학번인데 88세까지를 제 인생의 2단계라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60세에 정년퇴직을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60세부터 2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각을 참 고생하면서 배웠습니다. 프랑스의 국경인 토리노에 가서 목조기술을 배우고, 이탈리아 4개 주물공장에서 5년 동안 고급집을 한 채 날릴 정도의 돈을 쓰면서 정말 어렵게 주물기술을 배웠어요. 그래서 이제까지 제가 배운 걸 후진들을 양성하면서 다 쏟아놓고 싶어요. 아트센터와 갤러리를 세워 세계적인 인재를 만드는 것, 그게 제 회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꽃들의 노래' 개최 보리수 아래 최명숙 회장 
정경연(1차108인) 2012 강원환경설치미술초대작가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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